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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판교 시집, 아직 아침 식사 전입니다, 시인의 몰락(1)(2)

by 디올뉴 2023.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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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몰락 (1) 파란 겨울의 끝자락 끝없이 펼쳐진 종말 첫사랑이라든가 물방울이라든가 나른함이라든가 이런 것들은 이제 책에서만 간혹 볼 수 있을 뿐 판타지였다 언젠가 비오는 일요일이었던가. 라면을 끓이다 슬쩍 엿보고 말았는데 진면목은 겁쟁이였고 이름은 무명이라 했다 군복이 아닌 무지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끝없는 종말은 재앙인가 해피니슨가 묻는 듯 했다 앞선 이들이 바위에 새긴 어여와, 부르는 소리가 고대 신의 이름처럼 들렸다 유성우가 쏟아질 때면 가끔 사이렌도 울렸다 (누구였을까 신화 속 여인은?) 새벽을 기다리다 목이 빠진 이들은 이제 먹지도 못했다 예전엔 모두 초능력자들 하지만 물에 빠진 후론 범부(凡夫)만도 못한 생 태양이 집인 이들은 돌아갈 수도 없어 웅크리고 웅크리다 그대로 저잣거리에 돌이 되었다 ------------------------- 범부(凡夫) : 평범한 사내. (불교) 번뇌에 얽매여 생사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저잣거리 : 장이 서는 거리. 가게가 죽 늘어서 있는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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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몰락 (2) 태초에 신은 영원을 순간 속에 감췄다 그 후로 사람들은 영원을 잊고 살았다 간혹 미친 사람들이 나타나 찰나 찰나 상자 속 영원을 엿볼 뿐이었다. 물론 그들이 원한 일은 아니었다. 마치 신이 지명이라도 한 듯 부득이 내몰린 것이다 세상은 그들에게 자소서(自紹書)를 요구했고 그들은 자신을 무명(無名)이라 소개했다 그중에 더러는 유명한 이들도 있어 마음속 상자를 부순 탓에 괴물로 변해갔다 ----------------------------- 자소서(自紹書) : ‘자기소개서’를 줄여 이르는 말 무명(無名) : 이름이 없거나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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