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아직아침식사전입니다6 연작시, 이거 재밌는 거야? 정판교 시집, 아직 아침 식사 전입니다 이거 재밌는 거야?(1) 난 섬에 가서 굶어 죽을 거야 라고 말하는 너보다 뭔 소리야? 라고 묻는 대신 언제? 라고 묻는 내가 더 섬뜩했다 넌 대답했다 십이월! 12월? 그땐 혼자 추울 텐데 야, 굶어 죽기 전에 먼저 얼어 죽는 거 아냐 이쯤 되면 알겠지? 다 농담이고 난 네가 죽는 건 상상할 수도 없다는 걸 추운 건 싫은데... 그래, 너 추운 거 싫어하잖아 12월은 안 돼 그럼 언제? 갑작스런 너의 질문에 난 당황했다 언제? 언제냐고 가만있어 보자... 그게 그러니까... 유서 먼저 써야 되지 않아?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 유서? 그래, 죽는다며 죽기 전엔 보통 유서를 남기잖아 난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다 유서라는 말에 넌 뭔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그 침묵에 숨이 막히는 거 같기도 하고 차오르는.. 2023. 10. 23. 연작시, 기분 좋은 날, 정판교 시집, 아직 아침 식사 전입니다 1. 하얗게 타오른다 스러지지 않는다 그 불꽃같은 어리석음을 다시 꿈꾼다 아 사랑 없는 혁명은 얼마나 헛된 몸부림이었던가 어리석음을 탓하던 그 시절 나의 생은 얼마나 서툴렀던가 하지만 지혜는 항상 내 안에 있었으니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그땐 어떻게 깜깜한 밤길도 넘어지지 않고 걸을 수 있었는지 간신히 숨을 쉬는 지금도 그런 어둠 속인데 깊은 골짜기에서 끄덕이게 된다 그렇구나 그런 거였구나 그래서 그렇게 어두웠구나 그래서 그렇게 선명했구나 참 다행이다 참을 수 없이 아프지만 한 치 앞도 보이진 않지만 곧 날이 밝아 올 거야 기분 좋은 날이, 할 수 있는 걸 맘껏 해도 널 그리워할 수 있는 그런 날이 곧 밝아 올 거야 2. 아무리 꼭꼭 숨어도 우연은 물결처럼 날 찾아오고 스르르 스르르 하얗게 하얗게 사방.. 2023. 10. 20. 정판교 시집, 아직 아침 식사 전입니다, 시인의 몰락(1)(2) 시인의 몰락 (1) 파란 겨울의 끝자락 끝없이 펼쳐진 종말 첫사랑이라든가 물방울이라든가 나른함이라든가 이런 것들은 이제 책에서만 간혹 볼 수 있을 뿐 판타지였다 언젠가 비오는 일요일이었던가. 라면을 끓이다 슬쩍 엿보고 말았는데 진면목은 겁쟁이였고 이름은 무명이라 했다 군복이 아닌 무지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끝없는 종말은 재앙인가 해피니슨가 묻는 듯 했다 앞선 이들이 바위에 새긴 어여와, 부르는 소리가 고대 신의 이름처럼 들렸다 유성우가 쏟아질 때면 가끔 사이렌도 울렸다 (누구였을까 신화 속 여인은?) 새벽을 기다리다 목이 빠진 이들은 이제 먹지도 못했다 예전엔 모두 초능력자들 하지만 물에 빠진 후론 범부(凡夫)만도 못한 생 태양이 집인 이들은 돌아갈 수도 없어 웅크리고 웅크리다 그대로 저잣거리에 돌이 되.. 2023. 10. 19. 정판교 시집, 아직 아침 식사 전입니다, Chung Pan Gyo Poetry, 종일행지자(1)(2) 종일행지자(終日行之者) (1) 종일 하는 일은 날 재우는 일 시 뭉텅이를 툭 던져두고 창문 틈 햇살을 피하는 일 음지에 눕는 일 핏빛 찻물을 휙 뿌려 봄의 꽃을 태우는 일 받은 적 없는 것을 애써 가지려 하지 않는 일 졸이고 졸여 짠해진 된장국을 한술 뜨는 일 늙은 세탁기를 손수 돌리는 일 빈 쌀통을 박박 긁어 밥 짓는 마법을 부리는 일 근데 시란 참 이상해 면죄부 같거든 갚지도 않았으면서 내빼는 이방인으로 살다가 결정적일 땐 선민(選民)인 척 혹 이 길로 지나다가 구겨진 시를 보거든 못 본 척 손으로 쓱 지워 주게나. -------------------------- 종일행지자(終日行之者) : 종일 -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내 – 그것을 행하는 사람 선민(選民) : (기독교) 하나님이 거룩한 백성으로 택한.. 2023. 10. 17. 이전 1 2 다음 반응형